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국민학교 동창생 서사를 통해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만나고 전쟁과 평화를 생각합니다. <국가에 동원된 월남전 참전군인의 삶에 대한 연구>를 응원해주세요.

  • 서울시 용산구 백범로99길 40 용산베르디움프렌즈 101동 지하1층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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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후원함은 2022-12-18에 종료되었습니다.
  • 2022/12/30 '월남으로 간 동창생을 찾아서'를 후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2/12/14 [구술활동 리뷰 4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코코아 한잔 팀원들의 활동 리뷰를 공유합니다!

    참전군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꼭 월남에 가서 몸 다치기도 하고 고생도하고, 그것들이 이후 수십년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 같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것들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후회한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번에 만나뵌 임호영 어르신은 월남에 다녀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후회해봤자 소용 없다며 지나간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임호영 어르신은 도깨비 부대 소속으로 월남에서도 잦은 전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대에서 근무하셨다. 트라우마로 남을법한 일들도 많았을텐데 전시에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만나온 여러 참전군인들 중에는 코코아 한잔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의무감과 정의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분들도 계신다.
    그에 반해 임호영 어르신은 기피적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임호영 어르신이 외면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을 전부 안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월남에 다녀온 것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서도 안좋은일, 나쁜 감정들을 마음에 담으려 하지않으시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이 임호영 어르신의 살아남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또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주시는 분이시다. 새삼 참전군인들이 인터뷰에 응하는데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코코아한잔 솔

  • 2022/12/14 [구술활동 리뷰 3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코코아 한잔 팀원들의 활동 리뷰를 공유합니다!

    양정석 선생님의 고모, 양상순님을 찾아뵈었다. 양상순님은 조카가 월남에 갔다는 소식을 편지로 들으시고는, 동네에 월남에 다녀온 분을 찾아가 참전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한다. 물이 귀하다는 말에 은반지를 사서 월남으로 보내셨단다. 은반지를 물웅덩이에 담가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 마시라고. 편지와 함께 보냈지만 은반지는 중간에 빠져 도착하지 못했다. 그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고모가 이렇게나 조카를 아끼는 마음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시대가 바뀌고 가족의 단위가 작아진 지금, 나에게는 조카를 걱정하는 고모의 그 큰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 시절 월남 이야기를 들려주신 마을 분과, 월남에 간 양정석 선생님, 고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느낄 뿐이다. 마을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코코아한잔 노랭

  • 2022/12/06 [구술활동 리뷰 2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코코아 한잔 팀원들의 활동 리뷰를 공유합니다!

    해병대에 입대해 월남에 다녀오신 김정용 어르신을 만났다. 김정용 어르신은 군대에서 갖은 가혹행위를 겪으시며 군생활을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이 겪으신 폭력적인 상황을 허허 웃으며 이야기 하시는 것이 의아했다. 또 일어났던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해주셨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 들었던 생각은 말씀해주시지 않아 여쭤봤다. "그 당시에는 어떤 마음이었어요?"
    많이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선임에 게 느낀 분노와 원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김정용 어르신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하며 만나뵙는 참전군인들은 옛날의 힘들었던 기억,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고 싶어하셨다. 어떤 분은 잊어야 산다고 말씀하셨고, 어떤 분은 그땐 힘들었지만 필요한 경험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을 들으며 잘 얘기하려 하지 않으시는 몇 십년 전 그때의 감정이 더 궁금해졌다. 잘 가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기록하고 싶다.

    -코코아 한잔 은결

  • 2022/12/06 [구술활동 리뷰 1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코코아 한잔 팀원들의 활동 리뷰를 공유합니다!

    양상순님은 직접 찾아뵙기전에 녹취록을 보았을때 정말 만나보고 싶은 분이셨다. 은반지를 월남에 보냈지만 그 은반지 얘기만 답장에 없었다는 이야기 양정석 선생님이 얼마나 똑똑하고 귀했고 이모 고모 할 것 없이 사랑 받았고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서 양정석 선생님이 정말 사랑 받으며 자랐다고 느꼈고 고모님이 정말 마음이 좋으신 분이다 라고 느꼈었다. 또 6.25 당시내용중 피난을 가지않고 굴에 들어가 계셨다는 이야기들이 홍천 물걸리 그림책< 순복이>의 원순복님의 이야기와 흡사한 면이 있어 그분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직접뵈니 말씀을 정말 잘하시고 모습도 상상했던 느낌이셨다. 양정석 선생님과 전화하셨던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보이시는 모습과 잘 다녀와서 고맙다고 계속해서 말하시는 모습에 그당시 가족분들의 불안했을 감정이 느껴졌다.

    -코코아 한잔 채원

이 후원함에 대하여

 이 사진의 주인공 중 몇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까요?

 금마국민학교 제48회 졸업기념 <출처> 금마초등학교 역사관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금마국민학교는 1911년 문을 연 학교입니다. 양정석과 동창생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이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전후 복구 시기인 가난한 시절 학교에 다니고 1960년 초에 졸업한 금마국민학교 남자 동창생 1백여 명 중 10여 명은 월남에 갔습니다. 그중 대여섯은 전투병이었습니다. 돈을 벌러 간 친구도 있었지만 강제로 간 친구도 셋이나 있습니다. 누구는 영창에 가기 싫어서 누구는 더 나쁜 선택을 안 하기 위해 월남에 갔습니다. 전투병으로 간 친구 중엔 전쟁터에서 맹활약했으나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도 있습니다. 고인이 되었거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빼면 둘이 남는데 한 사람은 현재 와병 중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 연구에 함께하는 참전군인 양정석입니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양정석(좌)과 손채황(우)

  

국민학교 동창생의 서사를 통해 전쟁의 기억을 만납니다.

이 연구는 월남전이 학교, 마을,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었음을 인지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월남전 파병의 기억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국민학교 동창생의 서사를 찾아 월남전의 기억을 돌아보려 합니다. 또 이제껏 말로만 전해 내려왔던 월남참전군인의 전후 삶을 확인하고, 마을 중심으로 공동체 구성원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역사, 그로부터 연결된 삶을 연구 조사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찾아가는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시선도 함께 담아갈 예정입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다시 '철수'가 될 수 있었을까?

1964년부터 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한국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의 명분 속에 32만여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청년들이 총을 들고 월남으로 갔지만 사실상 이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잊힌 전쟁으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청년 시기 전장을 경험한 참전군인의 삶은 전쟁이 끝난 지 50년 세월이 흐르도록 관심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의 현장에 젊은이들을 동원했지만 고통은 개별화하였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동원된 월남전 참전군인의 삶을 찾아 폭력의 현장에서 총을 들어야 했던 그들, 가해와 피해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려 합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숫자보다 귀국 후 본국에서 자살한 참전군인의 숫자가 1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들은 노숙자가 되거나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이혼, 실업, 폭력 등 여러 사회 문제에 참전군인이 등장했습니다. 트라우마라는 표현과 이에 대한 관심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으로 인한 사회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진제공 임호영 월남참전군인

 

그럼 베트남전쟁에 수많은 군대를 파병한 한국사회는 어땠을까요? 그것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분명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후 귀국한 한국의 참전군인은 아무런 문제없이 전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을까요? 이런 질문 속에 우리의 연구활동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농촌지역이었던 한국, 그래서 월남에 간 군인들도 농촌 출신이 많았습니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익산시 금마면은 말하자면 그 시대의 보편적 공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마국민학교 동창생과 익산지역 참전군인의 삶은 공동체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전후 삶에 대한 구술과 실태조사의 성격을 가집니다.

 

동창생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연구의 시작은 월남에 간 동창생을 찾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기꺼이 그 일을 맡은 이는 고향에 오래 살고 있는 또 다른 동창생입니다. 동창생의 소개로 월남 다녀온 동창을 만나는 자리엔 보통 네댓 명의 동창과 선후배가 자리합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 속에 연구가 이루어 지지만 동창생을 찾기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들을 만나 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코로나가 발을 묶어 만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우리는 동창생을 만나기 위해 산속 목장으로, 감자밭으로, 익산 월남참전기념탑으로, 향교로, 금마면 일대를 동분서주합니다. 70대 중반 80줄에 들어선 동창생들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감자밭에서 동창생 찾기

동창생 찾아 마을 곳곳을 다녀보고

더운 여름, 익산향교에서 다리쉼도 하고

산속 목장으로 동창생을 찾아가 무작정 기다려도 보고

얏! 출동이다~

연구프로젝트에 도움을 준 동창생들

 

 

그림 채원, 지도제공 양정석 

 

 

이 연구에는 평화활동가, 월남전 참전군인, 청년들이 함께합니다.

연구에는 월남전 참전군인, 월남전 참전군인의 가족이자 평화활동가, 청년과 청소년 평화활동가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체가 팀을 이루어 서로의 시선이 잘 스며들고 교차되어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연구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줄) 양정석 월남참전군인, 채원 (뒷줄) 노랭, 솔, 석미화, 은결 

 

참전군인에게 전쟁 경험이란 그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참전군인에게 전쟁 경험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이후로 계속된 의 문제였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들여다보지 못한 참전군인의 이야기에 다가갑니다. 그들의 전쟁 경험을 사회적 기억으로 불러오고 평화의 기회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참전군인 이야기를 통해 피해중심의 인권의식을 넘어 폭력의 현장이 빚어내는 근본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돌아봄으로써 평화와 인권 의식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월남으로 간 동창생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저마다 자신의 전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을 통해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그들의 전쟁 경험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나갑니다.

대한민국은 파병국가입니다. 1964년 베트남전쟁이 파병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연구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해외파병의 문제와 베트남전쟁 전후로 이어진 한국사회 폭력의 역사와 연결고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 폭력의 고리를 끊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후원금은 이렇게 쓰입니다.

구술활동출장비 900,000원
연구결과보고서 인쇄비 800,000원
엽서 인쇄비 100,000원
배송비 200,000원
2,000,000원

 

 

 

 

지원기관: 재단법인 진실의 힘

주최: 아카이브 평화기억 '코코아 한 잔'팀

아카이브 평화기억

아카이브 평화기억

아카이브 평화기억은 평화와 관련한 기억을 찾아 만나고, 소통하고, 나누는 평화활동단체로 한국사회가 겪어 온 전쟁과 폭력의 경험을 평화의 지렛대로 삼고자 개인의 전쟁 기억과 삶을 구술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콘텐츠 개발·평화교육·법제도개선에 힘씁니다.

후원자들의 한마디

  • 신필식 : 작으나마 도움이 되면 기쁘겠습니다. 제작 감사하고 응원드려요!
  • 김찬권 : 항상응원합니다.
  • 김학규 : 평화를 위한 활동 응원합니다.
  • 이정현 : 채원님과 포중 친구분들의 멋진 프로젝트를 응원합니다
  • 이진주 : 결과물도 기대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의미 있고 뭉클하네요.
  • 정현영 : 역사적 사건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피는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반전, 인권 이슈보다 힘이 느껴집니다.
  • 이남실 : 의미 있는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 정설경 : 기록을 응원합니다
  • 최원규 : 금마국민학교 60회 졸업생으로 이 기사를 보고 후원합니다. 생존해계신 외삼촌, 사촌형님 월남참전하셨습니다. 외삼촌 한분은 월남전 참전 하셨는데 고엽제의증자셨고 몇년전에 그리 많지않은 나이로 사망하셨습니다. 59년생인 저의 어릴 적 기억에 귀국, 제대한 분들의 귀국나무박스에서 씨레이션, 흑백티비, 군용텐트와 같은 군용물자, 심지어 폭약도 쏟아져나왔었죠. 간식거리가 없던 시골에서는 그 박스는 산타의 선물같았습니다. 그 내용물들이 목숨을 건 참전에서 건진 것들이라는 점은 커가면서 알게되었습니다. 의미있는 연구 감사합니다.
  • 한지연 : 응원합니다!!